쪽글 (참회록)
2013-03-10 김홍채
1. 한 인간과 그 인간이 남긴 결과물을 이해하려면 그 개인의 생애와 시대상황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되므로 톨스토이의 개인사를 요약해 본다.
1828년 러시아 중부 지방에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백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862년 34세 때 18세인 소피아(1844~1919)와 결혼하여 1863년~1888년 사이에 13명의 자녀를 낳았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에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1880)을 52세에 내놓았고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었으며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극심한 기근이 발생), 이것으로 가족과 갈등을 빚어 부인이 저작권을 관리하게 되고 1984년 처음 가출을 하였으며 마지막 소설인 <부활>(1899)은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두호보르 종파를 위한 자금을 모으려고 쓴 것이었다. 1901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고 1910년 10월 28일 주치의와 함께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올랐으나 아스타포보라는 작은 시골 기차역에서 11월 20일 82세에 사망했다.
동시대의 소설가로서 가난과 간질, 10년간의 시베리아유형 등으로 고통을 받았던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에 비해 7년 늦게 태어나서 부유한 환경 속에서 29년 더 살았다. (19세기 서양의 평균수명이 35세 정도인데 비해 굉장히 장수, 60세에 13번째 자녀를 얻었으며 82세에 사망.)
2. 성찰 대상 글
<신의 존재에 대한 신앙을 상실했을 때 나는 살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신을 발견하려는 희망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벌써 자살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을 느끼고 신을 탐구하고 있을 때만 나는 살아있는 것이었으며 실로 살아있는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정녕 이것 말고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라는 소리가 나의 내부에서 들렸다.
“이것이 바로 신이다.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바로 그것이다. 신을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똑 같은 것이다. 신은 곧 생명이다.”
신을 구하며 살라. 그리하면 신이 없는 생활은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자명하게 깨닫기가 무섭게 나의 내부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지금까지 보다 훨씬 밝고 빛나게 드러났다. 이 빛은 이후 결코 나를 방치하는 일이 없었다. (인생론/참회록, 지경자 역, pp.258-259)>
3. 성찰 이슈
3.1. ‘신의 존재에 대한 신앙을 상실했을 때 나는 살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라고 하였는데 인생에 대한 회의와 권태의 연장선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 믿음을 상실한 것이 아닌지?
3.2. ‘신은 곧 생명이다.’ 라고 하였는데 신이란 무엇인가?
=> 톨스토이의 신은 원시기독교에서의 구세주를 뜻하는 것 같은데 신앙인이 아닌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3.3. 신을 구하며 사는 생활 만이 진정한 삶인가?
=> 신앙인으로서의 신앙고백으로서는 큰 의미가 있겠지만 무신론자를 포함한 비신앙인에게는 ‘신을 느끼고 신을 탐구하고 있을 때만 나는 살아있는 것이었으며 실로 살아있는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지?
3.4. ‘신을 구하며 사는 것이 빛이 되어 이후 결코 나를 방치하는 일이 없었다.’ 라고 하였는데
과연?
=> 1896년 참회록이 나온 지 16년 후 아내와 아내의 피아노 레슨 선생의 관계에 대한 격렬한 질투심 그리고 1910년 ‘내게는 달리 방법이 없구려. 집에 있기가 너무 힘이 든다오. …’ 라는 편지를 남기고 82세에 가출한 것 등을 볼 때 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하는 바람과 가족, 여유로운 주위 여건 속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한 부담감 사이에 고뇌와 갈등을 겪고 있었을 것임.
4. 상기 성찰대상 글과 상담과의 연계
내담자가 신앙인 특히 기독교인일 경우에는 삶의 의미탐색에 대한 하나의 접근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담장면과는 별로 연관시킬 수 없을 것임.
다만 세계적인 문호이자 사상가이기도 한 톨스토이가 52세 중년의 나이에 정리한, 삶에 대한 회의를 겪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솔직한 고백을 읽어 봄으로써 삶에 대한 회의나 무의미함과 관련한 고뇌가 누구에게든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삶의 과정일 수 있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임. (이상)